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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 분석

저비용 고효율로 브랜드를 되살리다 - 바이오하자드 7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개발사 캡콤이 기술력을 가장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간판 브랜드다.

 

회사가 3D 액션게임 명가라 불리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바이오하자드에서 파생되어 나온 <귀무자>와 <데빌 메이 크라이>의 성공 덕분이었다.

 

3D 액션 장르에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는 <바이오하자드 4> 역시 숄더 뷰 카메라를 위시한 과감한 혁신 덕에 최고의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캡콤의 암흑기는 바하 5, 6으로 이어지며 시리즈 정체성에 혼란이 찾아온 시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바하 4에서 대폭 강화된 액션성과 특유의 숄더 뷰 카메라는 후속작으로 계승될수록 바하의 핵심인 긴장감과 공포감을 흐리며 팬들의 기대를 충족해주지 못했다.

 

결국 이 시기에 캡콤은 게이머들을 실망시키는 회사로 인식되기 시작하고, 일본 게임 업계 전체가 세계적인 흐름에 뒤쳐져있다고 평가받는 지경에 이른다.

 

 

 

 

여기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 하나의 작품이 바로 <바이오하자드 7>이다.

 

바하 7은 절치부심한 캡콤이 마치 '다시 한번'을 외치며 만든 듯한, 자사의 새로운 게임엔진 RE 엔진으로 선보인 첫 번째 게임이었다.

 

트레일러와 데모가 차례차례 공개되면서 게이머들은 캡콤의 간판 프랜차이즈가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으며, 다시 뭔가 보여줄 준비가 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초인적인 자질이 강조됐던 기존의 주역 캐릭터들에서 벗어나, 평범한 청년 에단 윈터스가 되어 실종된 부인을 찾아 어느 낡고 수상한 집에 들어간다는 설정도 호기심을 자아냈다.

 

포토리얼리즘을 표방해 비주얼이 너무나도 현실적인데다 시리즈 최초로 도입된 1인칭 시점, 어디서 유령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서양 스타일의 공포 분위기가 어울려 강렬한 한방을 날렸다고나 할까.

 

 

 

 

하지만 과거의 성공공식을 탈피하고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했기 때문인지, 바하 7은 전형적인 블록버스터가 아닌, 경제적으로 오밀조밀하게 설계된 퍼즐박스와도 같은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다시 말해 제한된 리소스 안에서 최대한의 게임플레이를 뽑아내는 방식으로 설계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시기의 캡콤이 바하 7을 일반적인 AAA 스케일로 만들기에 여러모로 부담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신중한 모험은 결과적으로 바하 뿐 아니라 캡콤이라는 브랜드 전체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바이오하자드 시리즈는 다시 호러 게임 브랜드로서의 명성을 되찾았으며, 개발사 캡콤에 대한 세간의 평가 또한 높아져 게이머들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바하 7은 어떤 점에서 경제적으로 개발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선, 게임의 전체적인 맵 규모가 작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나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처럼 거대한 세계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바하 7은 기본적으로 4명 가족이 주거하는 공간이 주무대이다.

 

후반에 등장하는 다른 공간을 합치더라도 내부가 여러 층, 여러 방으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을 지언정 전체적인 공간의 너비는 상당히 작은 편에 속한다.

 

또한 벽이나 바닥, 가구 등이 최대한 현실적인 비주얼을 지향하는 만큼 실제 사물을 3D 스캔한 데이터를 마음놓고 쓸 수 있기 때문에 환경 구현 측면에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클래식 스타일로 회귀한 특유의 길찾기 방식도 경제성을 더해준다.

 

플레이어에게 잠긴 문이나 상자를 보여주면, 열쇠를 찾아서 가지고 오는 동안 플레이타임 상당부분이 한정된 공간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데에 쓰인다.

 

이번 작에서 처음 선보인 비디오 테이프 재생 구간은 공간 재활용 중에서도 백미다.

 

게임 상에서 획득한 녹화테이프를 재생하면, 영상 속 인물이 되어 과거에 벌어진 사건을 체험하게 함으로써 하나의 공간에서 전혀 다른 상황이 플레이된다.

 

마지막으로, 불에 탄듯 검게 뭉개진 이번 작의 좀비 디자인도 비용절약에 도움이 되는 특징이다.

 

당장 RE:2와 비교해보면 7편의 좀비는 다양한 복장과 페이스를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캡콤은 예전부터 애셋이나 시스템을 교묘하게 재활용하는 데에 도가 튼 회사였다.

 

바하 2의 대성공 이후 출시된 바하 3는 아예 대놓고 바하 2의 경찰서 애셋을 통째로 재활용했을 정도였고, 이는 리메이크 버전인 RE:3에도 똑같이 해당된다.

 

한때 캡콤의 대표작이었던 귀무자 시리즈는 '전국시대 바이오하자드'라고 불릴만큼 클래식 바하와 상당히 닮아있다.

 

언젠가부터 반드시 버질을 플레이어블로 추가한 확장판이 출시되는 데메크 시리즈는 아예 똑같은 보스전을 두 캐릭터로 한번씩 플레이하게 만든 적이 있을 정도다.

 

몬헌 시리즈 역시 기존 몬스터의 골격을 재활용해서 신규 몬스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나, 한번 등장한 몬스터는 후속작에 얼마든지 재등장시킬 수 있다는 측면에서 캡콤식 리사이클(?)에 매우 적합한 브랜드다.

 

이것이 너무 노골적이고 뻔한 상술이었다면 우려먹기로 욕 깨나 먹겠지만, 코에이나 게임프릭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캡콤은 혁신과 재활용의 균형을 잘 지키기 때문에 크게 지적받지 않는다.

 

예를 들어 몬헌 시리즈의 네르기간테와 마가이마가도, 발파루크는 모두 고어 마가라의 골격을 재활용해 만들었지만 너무나도 구별되는 개성들을 보유해 골격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파악하는 것조차 어렵다.

 

 

 

결과적으로 바이오하자드 7은 개발사로서 캡콤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후에 출시된 데빌 메이 크라이 5, 몬스터 헌터 월드, 록맨 11은 각자의 시리즈를 매너리즘에서 탈피시키며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원작이 너무나 명작이었기에 우려가 많았던 RE:2는 오히려 게임 리메이크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바하 7의 후속작인 바이오하자드 빌리지 또한 풍성해진 볼륨과 더욱 발전한 연출로 좋은 성과를 냈다.

 

재밌는 점은 바하 빌리지 출시 전부터 이미 애셋 재활용의 가능성이 제시됐다는 점이다.

 

현재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진 바하 4 리메이크(이하 RE:4)에 등장할 레벨들을 생각했을 때, 공유하는 애셋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보이는 데다가 4편 특유의 칼로 상자 부수기, 무기상인 등이 빌리지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RE:4를 기다리는 게이머라면 빌리지의 시스템과 레벨이 하나둘 공개될수록 'RE:4 만들다 엎어지고 빌리지로 바꾼건가'하는 생각이 들어도 무리가 아니었다.

 

 

 

세계적인 게임 스튜디오들이 모두 캡콤처럼 애셋과 시스템 재활용에 적극적이냐면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장르를 대표할 정도로 인기 많은 시리즈를 다수 보유한 캡콤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꾸준히 작품을 출시하려면 그 사이에 게이머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개발 효율성을 높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