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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리뷰 & 분석

몬헌 라이즈, 고질적인 불편함을 한방에 해결하다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초기 작품들은 신선한 매력 만큼이나 불편한 점도 만만치 않았다.

 

단순하면서도 깊이있는 무기액션에는 콤보니 스왑이니 복잡해지기만 하던 당시 액션게임의 흐름에 역행하듯 묵직한 느림의 미학이 진하게 배어있었다.

 

전설의 시작

 

자연의 생물을 수렵한다는 컨셉에 맞춰, 천연소재를 조합해 함정이나 폭탄, 특수탄환 등을 활용하는 전략적인 요소를 통해 단순한 대결이나 전투와는 근본적인 결이 다름을 강조했다.

 

문제는, 사냥으로서의 현실성을 추구하다보니 게임적 허용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온갖 불편함들이 산재해 있었다.

 

오늘은 닌텐도 스위치로 출시된 몬스터 헌터 라이즈가 신규요소인 밧줄벌레를 통해 어떻게 기존의 불편함을 과감하게 타파했는지 살펴보겠다.

 

 

일어나면 맞고 일어나면 맞고...

자기 몸보다 큰 무기를 휘두르는 헌터도 집채만한 비룡의 몸통박치기를 버텨낼 수는 없다.

 

붕 날아가서 한바탕 나뒹굴고, 느릿느릿 정신차리며 일어나는 애니메이션을 한참동안 관람한 뒤에야 비로소 컨트롤러의 명령대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운 나쁘게도 후속 패턴의 타이밍이 맞아떨어져 헌터가 일어난 순간 다시 공격이 들어온다.

 

가드가 있는 무기라면 사정이 좀 낫지만, 나머지 무기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또 얻어맞아야 한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두세방 얻어맞고 나면, HP가 간당간당한 건 둘째치고 헌터가 스턴 상태에 빠진다.

 

열심히 버튼을 연타해보지만 그 틈에 날아온 브레스 공격에 장렬히 수레에 실려나가는 처지가 된다.

 

마치 대전격투 게임의 한방콤보처럼, 플레이어는 한 대 잘못 맞았다가 아무것도 못한 채 사망해버리는 불합리한 상황이 펼쳐진다.

 

몬헌 라이즈에서는 이러한 사고를 방지하는 용도로 헌터가 얻어맞고 날아가는 도중 밧줄벌레를 써서 원하는 방향으로 튀어나가는 것이 가능하다.

 

순식간에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밧줄벌레가 하나만 남아있어도 사용 가능하며, 곧바로 납도 상태가 되기 때문에 착지 후 긴급회피로 최악의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거기다가 기나긴 넉백 애니메이션을 감상할 필요 없이 곧바로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전반적인 플레이 템포가 상승한다.

 

 

평범한 대검이고 싶지 않아..!

무기에 맞는 효율적인 콤보 루트가 있기 마련이라, 같은 무기라면 플레이어마다 큰 스타일의 차이 없이 운용법이 정형화되기 마련이었다.

 

이 문제해결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몬헌 크로스에서는 스타일과 수렵기술을 조합해 무기 운용법을 큰 폭으로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어 마치 그동안의 암묵적인 전통이 깨진 듯한 신선함을 불러일으켰다.

 

수렵기술이 라이즈에서 보다 다듬어진 형태로 구현된 요소가 바로 교체기술이다.

 

기본적으로 무기마다 밧줄벌레를 소모하는 특수한 기술들이 부여되었는데, 이것을 3개까지 커스텀 가능하도록 만들어 헌터마다 자신의 색깔에 맞는 고유한 운용방식을 찾을 수 있게 됐다.

 

벌레철사의 '탄력'을 응용한 교체기술

크로스, 더블크로스에서는 공용, 무기전용 합쳐 20개에 육박하는 스킬 중 맞는 것을 찾는 과정이 되려 부담이었는데, 라이즈에서는 각 슬롯마다 선택 가능한 교체기술이 정해져있어 직접 여러가지 조합을 테스트해볼 만 하다.

 

주로 사용하는 교체기술에 따라 방어구 스킬이나 선호하는 무기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래저래 헌터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고 본다.

 

 

메인캐릭터 조작해보는데 17년 걸렸습니다

몬헌에서 헌터는 플레이어의 고유한 아바타에 가깝다.

 

따라서 별다른 부가설정이 없고 시리즈를 관통하는 큰 줄기의 스토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포켓몬스터의 레드처럼 한때 아바타였지만 현재는 네임드가 된 캐릭터도 없다.

 

반면, 몬스터에 대한 설정과 백스토리는 이보다 더 세세할 수가 없다.

 

몬스터 디자인에서 장인정신이 느껴진다.

 

습성, 생태에 대한 온갖 설정이 디자인 상의 특징과 맞물려 굉장히 인상적인 캐릭터성을 구현해낸다.

 

마을이나 집회소의 NPC들도 몬스터와 관련한 일화를 이야기하고, 현실에서 인기가 많은 몬스터는 게임 상에서도 인기가 많은 것으로 묘사된다.

 

이들을 사냥하는 헌터도 강대한 몬스터의 소재로 벼려낸 갑옷과 무기를 착용해 강해진다.

 

게임플레이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재미는 모두 수렵하는 몬스터의 특성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시리즈를 깊이 파면 팔수록 몬스터에 대한 애정도 자연스럽게 커져간다.

 

이러한 점을 반영해 몬스터를 동료 캐릭터로 부리는 몬스터 헌터 스토리 시리즈가 출시됐고,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한 캡콤은 라이즈에도 비슷한 시스템을 반영했다.

 

리오레우스! 화염방사!!

 

이제 몬스터끼리 만나 싸움이 붙으면 한쪽을 조종해 괴수 대 괴수전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용조종이라고 불리는 이 시스템 덕분에 세력다툼 하는동안 팝콘 먹으며 구경만 해야 했던 몬헌 월드 때와 달리 헌터의 능동적인 참여가 가능해졌다.

 

디아블로스의 돌진이나 라잔의 에네르기파를 플레이어가 직접 구사할 수 있게 된데다가, 이제 수렵 중에 다른 몬스터가 끼어들어도 짜증나는 불청객이 아니라 든든한 지원군으로 여길 수 있게 됐으니 몬스터들에게 느끼는 심리적 친밀감이 더 커지게 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좋은 디자인이란

마리오의 아버지 미야모토 시게루는 '여러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예가 공격 수단이면서 이동 수단이고, 블록을 부술 때도 쓰이는 마리오의 점프다.

 

좋은 게임 메커니즘의 교과서로 평가된다.

 

미야모토의 관점에서 보면 몬헌 라이즈의 밧줄벌레는 그동안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타파하는 좋은 디자인의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밧줄벌레라는 하나의 '설정'으로 다양한 배리에이션이 저마다의 용도와 조작법을 가지고 존재하기 때문에, 각각이 별개의 디자인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일관된 시각효과와 원리적 특성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나는 충분히 하나의 디자인으로 응축할 수 있다고 본다.

 

밧줄벌레의 수많은 활용법 덕분에 게임은 전에 없이 복잡해진 것도 사실이다.

 

밧줄을 타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이동법도 자유자재로 사용하기까지 시간이 다소 필요하다.

 

나 역시 이미 엔딩을 보고도 버튼 입력을 수시로 헷갈리곤 하지만, 한층 역동적인 수렵 템포와 마치 스파이더맨이 된 듯 날아다니는 헌터의 모습은 환영해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