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게임 리뷰 & 분석

다크소울, 처절하고 외로운 탐험의 묘미

다크소울 시리즈를 비롯한 일명 소울라이크(Souls-like) 게임들은 높은 전투 난이도로 유명하다.

 

한때 온라인 상에서 '유다희'라는 밈이 유행했을 정도로 게임의 난이도는 그 자체로 시리즈의 아이덴티티가 됐다.

 

나도 알아..

 

하지만, 내 생각에 다크소울의 가장 핵심적인 재미는 난이도에만 있지 않다.

 

이번 글에서는 다크소울이 그토록 매력적일 수 있는 포인트 3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함께 하는 싱글 플레이

다크소울의 온라인 기능은 굉장히 독특하다.

 

그 전까지 멀티플레이 게임이라면 여러 사람이 동일한 가상세계에서 만나 협력하거나 대결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다크소울은 각각의 모험가들이 자기만의 세계에 속하도록 분리해놓고, 이들 간에 간접적이고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지게 만든다.

 

예를 들어, 현재 서있는 곳에 글귀를 남겨 다른 플레이어가 같은 곳을 지날 때 읽어볼 수 있도록 해주는 아이템이 있다.

 

바로 앞에 함정이나 숨겨진 아이템이 있을 경우 여러 개의 힌트(또는 낚시) 글귀들이 남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닥에 남겨진 혈흔을 읽으면 해당 장소에서 다른 플레이어들 사망하던 당시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강적이나 치명적인 트랩이 숨어있는 곳은 혈흔으로 범벅이 되어있곤 하기 때문에 플레이에 좋은 참고가 된다.

 

자칫 실수하면 인정사정 없이 죽어버리는 처절한 세계에서, 나와 같은 길을 지난 사람들의 자취를 발견하다보면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암령이 되어 다른 플레이어의 세계에 쳐들어가서 대결을 펼치는 것도 가능한데, 앞에서 언급한 요소들이 초보 플레이어에게 힘을 북돋아주는 장치라면, 암령 플레이는 컨트롤에 숙달된 유저들이 되려 초보들을 사냥하는 목적으로 활용하곤 한다.

 

다크소울의 참신한 온라인 플레이야말로 플레이타임이 한정된 패키지 게임이면서도 금방 소모되지 않고 오래도록 많은 유저들의 즐길거리가 되게 만든 주역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선 세계가 점점 나의 세계로

다크소울은 플레이어가 매우 쉽게 죽도록 만듦으로써 플레이타임 밀도를 높인 어드벤처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긴장감 속에 탐험을 하다가 마침내 화톳불을 발견했을 때의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초행길에서는 일반 몬스터도 모두 강적인데다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사실상 도중에 죽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나 한번 두번 다니면서 트릭을 피하는 법을 터득하고, 컨트롤이 발전하다보면 주변지형과 적들이 슬슬 친숙해진다.

 

마치 몬헌 시리즈에서 몬스터에게 맞고 구르며 대응법을 터득하고나면, 무섭고 가차없던 몬스터들한테 묘한 친밀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

 

전혀 관련없을 것 같은 장소들끼리도 지름길로 알차게 연결되어 있는 유기적인 레벨디자인 덕분에 각 지역의 이름과 위치, 특징에 대해 자연스럽게 숙달할 수 있다.

 

따라서 다크소울은 1회차와 2회차의 느낌이 유독 다른 편이다.

 

몸으로 익힌 컨트롤과 악랄한 함정의 기억은 어디 안 가기 때문에, 2회차에는 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게임 속 세계를 탐구하게 된다.

 

그리고 비로소 게임 속 세계에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기 시작할 때, 마지막 세번째 특징이 빛을 발한다.

 

 

설명하지 않는 스토리텔링

게임을 시작하면 플레이어 캐릭터가 누구이고 어디에 있는건지도 모른채 일단 감옥을 빠져나가야 한다.

 

그야 갇혀있길 원하는 사람은 없으니 딱히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없어도 자연히 열린 문으로 나가게 돼있다.

 

그런데 이후로도 플레이어가 하는 행위가 게임 세계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는 건지 알기가 쉽지 않다.

 

여행 도중 만나는 NPC들도 자기들 상황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만 할 뿐 뭐가 뭔지 하나하나 말해주는 설명충이 없다.

 

플레이어는 왜 망자가 되어 게임을 시작한건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건지 알 수 없다.

 

다만, 이 외롭고 처절한 세계에서 나가야겠기에 무작정 무기를 잡고 길을 찾아다닐 뿐이다.

 

단편적인 단서만 곳곳에 배치해놓고 굳이 플레이어가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강요하지 않는 이 특유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연구와 추측을 통해 세세한 스토리를 그려보도록 만들었다.

 

덕분에 게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오랫동안 회자될 수 있었고, 게임플레이는 또 플레이대로 이세계적인 분위기를 유지한 채 부드럽게 이어진다.

 

일일이 설명하진 않더라도 세계관 설정 자체는 꽤나 탄탄한데, 특히 끝없는 사망-부활의 반복이나 암령, 혈흔 등의 온라인 기능까지도 단순한 게임적 허용이 아니라 세계관에 존재하는 현상으로 풀어낸 점이 참신하다.

 

 

마치며

2010년대에 혜성같이 등장해 게임분야에 새로운 트렌드를 낳았다고 평가받는 다크소울은 사실 현재의 위상으로만 봐도 별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는 걸작이다.

 

다만, 게임이 가지는 매력이 여러가지 요소의 절묘한 시너지로 만들어진 만큼, 고난이도 게임의 대표주자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굳어지기엔 너무 아까운 작품인 것도 사실이다.

 

어려운 난이도에 고통받는 스트리머의 모습도 재밌는 볼거리지만, 컨트롤러를 붙잡고 몸소 처량한 망자가 되어 이 가차없고 아름다운 세계를 탐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두컴컴한 시련의 터널을 뚫고서 마침내 밟은 빛을 보았을 때의 감회는, 어쩌면 훨씬 어려운 강적이 예고없이 튀어나오곤 하는 우리의 삶에도 작은 한조각의 용기를 더해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