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삼국지를 좋아해서 관련 게임이나 영화를 꾸준히 즐겼다.
그 중에서도 오우삼 감독의 <적벽> 삼부작이 인상적이었는데, 첫 작품이 나왔을 때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관우, 장비, 조운이 마치 진삼국무쌍처럼 단기로 조조군을 수십명씩 썰어내는 씬은 영화의 백미다.
전쟁통을 빠져나온 유비와 손권이 서로 동맹을 맺고, 적벽에서 조조군을 상대할 준비를 한다.
그러고 영화가 끝난다.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는 마치 적벽 1편과도 같은 작품이다.
역대 게임 리메이크 중에 가장 기대받은 작품이 아마 <파이널 판타지 7 리메이크>일 것이다.
PS1으로 출시된 파판7은 닌텐도가 장악하던 콘솔 시장의 구도를 뒤집어버린 역작이었다.
원작의 단점이라면, 우선 현세대 게임에 익숙해진 우리의 눈에 너무도 뒤떨어져 보이는 그래픽이다.
십자키에 최적화된 조작법은 불편하기 그지없고, 한글화가 되지 않았다는 점도 치명적이다.
고전 JRPG 특유의 랜덤 인카운터 전투 방식도 쾌적한 플레이와는 거리가 멀다.
파판 7 리메이크는 위의 단점들을 없애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단점이 없어졌으니 완벽한가?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못하다.
파판 7 리메이크는 원작 팬들의 기대에 100% 부응하는 작품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파판 7 리메이크를 구매하기 전에 고려할 점을 원작 팬의 관점과 신규 유저의 관점에서 따져보겠다.
1. 비주얼과 사운드
파판 7의 이야기는 고철 파이프와 증기로 뒤덮힌 미드가르드에서 시작된다.
요즘 매체에서는 보기 힘든 스팀펑크 스타일이 인상적이어서, 파판 7에 대한 추억은 대체로 미드가르드의 이미지와 함께하곤 한다.
파판 7 리메이크 역시 미드가르드를 무대로 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소들이 최신 3D 그래픽으로 부활했다는 점만으로도 원작 팬들에겐 인상적일 수밖에 없다.
쓰레기 투성이지만 또 묘하게 색감이 다채로웠던 미드가르드 하층의 거리나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마황로의 모습은 예전의 투박함을 유지한 채 생생한 3D로 부활했다.
여기에 더해 원작의 테마곡들이 흘러나올 때면 그야말로 감동이 솟구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비주얼적으로 특히 메인 캐릭터 모델링이 훌륭한데, 조명과 어우러지는 클라우드의 머리카락 표현이 특히 인상적이다.
파판 7은 캐릭터 디자인에서 시대를 앞서갔던 작품이고, 사운드는 시리즈 최고 수준의 퀄리티를 보여줬기 때문에 신규 유저의 입장에서도 눈과 귀가 즐거운 작품이 될 것이다.
다만, 캐릭터 표현에 리소스를 많이 쓰기 때문인지 주변환경 텍스처가 다소 이질감이 느껴질 만큼 저화질인 경우가 다수 발생하는 점은 아쉽게 느껴진다.
2. 게임플레이와 레벨디자인
JRPG의 틀에서 최대한 액션 RPG로 변모한 모습이다.
파판 7 그 자체가 장르라고 생각한 것일까.
아무리 리메이크라도 이 정도로 기본 시스템이 바뀌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전투 시스템은 킹덤하츠 시리즈와 유사하다.
기본 공격이나 가드는 버튼 입력에 따라 리얼타임으로 반영되지만, JRPG식 커맨드 시스템이 존재해 전투 중간중간 기술이나 마법을 시전할 수 있다.
랜덤 인카운터가 아니라 필드에서 전투로 매끄럽게 전환되기 때문에 원작보다 진행이 쾌적하다.
마테리아 시스템은 동일해서, 장비에 마테리아를 장착시킴으로써 마법이나 패시브 효과 등을 부여할 수 있다.
전투 시스템의 단점은 애매한 실시간성에 있다.
마법이나 기술을 커맨드로 입력하면 일단 기존의 공격 애니메이션이 끝난 다음에서야 동작을 시작하기 때문에, 실제로 시전한 시점엔 이미 상황이 달라져있을 수 있다.
기술이 빗나갈 수도 있고, 적의 약점이 노출되는 시간이 끝났을 수도 있다.
아주 큰 문제점은 아니지만, 게임을 지속할수록 커맨드 기술이 헛치는 상황이 허탈하게 느껴지곤 한다.
제노블레이드나 테일즈 오브 어라이즈를 봐도, 실시간 액션을 접목한 JRPG는 여전히 실험 중에 있다.
레벨 디자인은 썩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제작한 레벨을 일회성으로 소모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은 보이나, 사이드 퀘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이미 지났던 지역으로 다시 돌아갈 때면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지역 간, 챕터 간 이동구간이 지나치게 길다는 인상도 있다.
무엇보다 짜증나는 건 틈새 이동 구간이다.
AAA 게임이라면 이제 좁은 틈새를 천천히 게걸음으로 통과하는 구간이 필수적인 것 같다.
보통 이런 구간은 로딩 스크린 없이 다음 지역을 불러오기 위한 눈속임 수단으로 쓰이곤 한다.
기술적인 필요에 의한 것인지는 몰라도, 거슬릴 정도로 틈새 이동이 많다.
다양한 목적으로 방문해야하는 꼬맹이들 아지트는 입구부터 틈새라 도무지 가고 싶지가 않다.
3. 스토리
스토리를 보면 파판 7 리메이크는 리메이크보다 리부트에 가깝다.
원작 팬들도 앞으로의 파트 진행이 궁금해지게 만들 변화점이 존재한다.
문제는, 한 작품으로 완결지었던 기존의 이야기를 여러 파트로 나누면서 지나치게 살을 붙이고 늘려놨다는 점이다.
원작을 플레이해봤다면 진행이 너무 느리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게임이 플레이어를 조금이라도 더 미드가르드에 붙잡아놓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왜냐면 미드가르드를 나가는 순간 엔딩이니까...
캐릭터의 매력은 매력적인 성우 연기로 한껏 살아났다.
특히, 개인적으로 원작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했던 에어리스가 굉장히 재미있고 호감가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중반부터는 게임이 재밌다기보다 캐릭터가 좋아서 진행을 하는 느낌마저 든다.
스퀘어 에닉스는 이번 리메이크를 시작으로 아예 하나의 유니버스를 구축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킹덤하츠가 그랬듯, 다양한 플랫폼에서 다양한 장르의 게임을 출시해 <FF7R 유니버스>를 만드는 것이다.
덕분에 스토리는 한없이 복잡해질 것이 분명하다.
개인적으로 좋게만 보진 않는다.
파판 7이 얼마나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지, 얼마나 돈줄이 될 수 있는지 아주 제대로 파악한 인상이다.
앞으로 몇년간 파판 7 관련 게임이 한 해에 한두개 씩은 출시될 것이다.
4. 종합
파판 7 리메이크는 아름답지만 지루한 게임이다.
원작 팬들에겐 추천한다.
특유의 사운드트랙과 새로이 부활한 그래픽은 파판 7 원작을 재밌게 한 플레이어에게 충분한 감동을 선사한다.
파판 7의 세계를 접한 적 없는 게이머라면... 개인적으로 권하지 않겠다.
일단 이야기가 완결이 되지 않았다.
나중에 모든 파트가 다 출시되고나서 묶음할인된 가격에 구입하는 편이 낫다.
캐릭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기라도 하면 앞으로 몇년 동안은 스퀘어 에닉스의 길고긴 인질극에 사로잡힐 수 있다.
다음 파트 언제 출시되나 하는 갈증을 느낄 때면 스토리 떡밥을 지닌 이런저런 외전들이 출시될 것이다.
이미 과거 이야기를 다룬 배틀로얄 게임이 개발 중에 있다.
메인 게임이 이 정도인데, 외전 작품들은 어떤 수준일지 걱정부터 앞선다.
차라리 손대지 않고 있다가 완결된 이야기를 한번에 정주행하는 편이 낫다.
이쯤에서 짧게 결론낼 수 있겠다.
파판 7 리메이크는 지나치게 장대하고 화려한 추억팔이의 서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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